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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e-book)으론 읽을 것이 없다

그릇을 샀다

몇 번의 망설임을 지나 이북 단말기를 샀다. 주위에 이북 단말기를 산 사람들에게 사연을 들어보면 한 번에 결정해서 사는 사람은 버릇처럼 쇼핑하는 사람 말곤 없다.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이북 단말기를 사는 숫자가 비례하지 않는다. 생선을 담기에 딱 알맞은 접시를 보면 그릇 앞에서 한참을 만지작 거린다. 생선 몸통처럼 길쭉하면서 생선의 기름기가 스며들지 않게 반질거리는 재질, 더 맛있게 보이는 색에 취해 손가락으로 그릇을 살살 문지른다. 옆에서 함께 사는 사람이 물끄러미 쳐다보다 어서 가자는 눈짓을 한다. 집어 들다 말다 반복하다 다음에 사기로 마음을 먹고 뒤돌아서기를 몇 번. 마침내 장바구니에 담아 결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릇부터 꺼내 놓는다. 깨끗하게 닦아내고 나서 생선을 찾아본다. 어느 생선이 어울릴까? 생선이 그릇에 딱 맞춰 오르고 식구들이 생선살을 젓가락으로 요령 있게 발라내며 먹으면 그만이다. 더 바랄 것이 없다. 


이북 단말기는 딱 생선을 담는 그릇이다. 접시 위에 먹고 싶은 생선을 올리면 그뿐인데 아뿔싸, 내가 원하는 생선이 없단다. 세상이 숫자처럼 아귀가 맞아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가지 이북 콘텐츠를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읽고 싶은 것이 없다. 이북으로 팔리는 파일들은 최근 것이다.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종이라는 몸을 보내고, 내용이라는 영혼만을 이북에 담아보고 싶었는데 영혼이 없단다. 


영혼이 사라진 이유

특히나 옛날 책이라면 팔지 않기에 살 수 없다. 정확한 사연은 책을 찍어 낸 출판사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봐야 하겠지만 책 한 권 사보자고 출판사에 문의할 만큼의 열정은 없다. 내가 원하는 머리 모양대로 안 나와도 헤어디자이너 선생님이 밝은 표정으로 정말 괜찮다고 하면 '아닌데요'라는 말을 삼키고 일어선다. 돈을 훨씬 많이 내는 헤어숍에서도 침묵하는 사람이 왜 이북을 판매하지 않냐고 출판사에게 물어보는 일을 감내하기엔 지나치게 어려운 어려운 일이다. 


출판사에서도 아직 종이책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종이책을 찍어낼지언정 이북은 잘 안 만든다. 그나마 신간은 거의 이북으로 만들어 내는 편이다. 서점을 항상 들락거리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먼저 판매하는 경우를 본 적은 없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종이책이 분명 돈이 더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자 책보다 종이책을 먼저 내고 더 많이 팔려고 하는 이유는 종이책을 사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라는 평범한 결론을 찾아냈다. 이북 단말기는 가지고 있는 사람 자체가 별로 없다.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기에, 전자책으로는 여러 가지 상품을 구성할 수 있기에 조금씩 늘어나긴 하겠지만 여전히 종이책이 더 많을 것이다. 게다가 책 시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책을 사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출판사 역시 점점 작아진다. 출판사가 작아진다는 의미는 일하는 사람도 사람이 적다는 말이다. 사람이 적다는 것은 '종이책만 찍기에도 버겁다'는 뜻이다. 그나마 기술의 발전으로 옛날처럼 원고를 인쇄할 때 하나하나 글자를 모아서 찍는 일은 없어졌다. 디지털 파일로 만들고 인쇄한다.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진 책은 전자책으로 바꾸기가 매우 쉽다. 그래서 요즘은 종이책이 나오고 동시에 또는 얼마 되지 않아 전자책이 당연히 나온다. 문제는 옛날 책이다. 옛날 책의 원고가 디지털 파일로 있을 리 없다. 있더라도 어느 버전인지 알 수 없다. 디지털 중에서도 이미지를 작업하는 사람들의 파일명은 '최종', '진짜 최종', '정말 정말 최종'이란 식으로 암호 같은 '내가 진짜 마지막'이라는 이름을 달고 줄줄이 만들어진다. 사람의 기억력이야 어느 것이 최종인지 금방은 기억하겠지만, 전쟁 같은 마감을 매번 반복하다 보면 뇌는 깔끔하게 옛 기억을 지워버린다. 어느 것이 진짜 마지막인지는 아무도 모르게 된다. 옛날 책을 이북으로 보는 것이 어려운 첫 번째 이유가 된다. 


설사 파일을 찾았다고 해도 어느 것을 전자책이라는 불멸의 영혼으로 탄생시켜야 할지 고르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옛날에 책을 냈던 저자와의 계약서에는 '전자책'으로도 팔 수 있다는 권리가 들어 있을 리 없다. 그 시대에는 인터넷이라는 말도 없었을 것이고, 있었더라도 출판사의 계약서에 인터넷과 관련된 일이 스며들지도 몰랐을 것이다. 설사 앞날을 잘 예측하는 출판사에서 문구를 만들어 디밀어도 알 수 없는 문구가 가득한 계약서에 사인할 저자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저자가 사망했다면 더 큰 문제다. 저작권은 사후에도 수십 년간 인정되는 권리다. 저자의 권리가 누구에게 넘어갔는지 찾아야 하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계약을 맺어야 한다. 파일도 찾아냈고 저자와의 계약을 새로 만들었다고 해도 문제가 남는다. 전자책으로 만드는 일은 글자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표지도 새로 디자인해야 하고 금액도 책정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만들었다고 팔릴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의 생각은 비슷하다. 한 움큼만큼의 노력을 들이고선 두 움큼 이상의 이득을 기대한다. 두 움큼의 이득이 될지 잘 모른다면 어려운 일을 억지로 할 이유가 없다. 결국, 보고 싶은 옛날 책을 이북으로 읽을 수 있을 가능성은 로또 2등에 당첨될 확률과 비슷할 것 같다.  


특단의 대책

가지고 있는 옛날 책을 구매라는 가장 편리한 자본주의의 방식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밝혀졌다. 그럴수록 더 보고 싶은 것은 아이나 어른 모두에게 심긴 이상한 욕망이다. 그래서, 현대의 구루를 찾았다. 검색. 그리고 해법을 찾았다. 


북스캔이란 생소한 단어. 찾아낸 실마리이자 열쇠다. 셀프 스캔이라고도 부른다. 북 스캔도 풀어쓰면 책(book)을 스캔한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남아 있는 단어인 스캔의 뜻을 알아내면 된다. 스캐너는 낯설지 않은 기기다. 종이나 사진을 스캐너에 넣고 스캔하면 디지털 파일로 떨궈준다.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만드는 것을 스캔이라 불러도 대략 맞을 것 같다. 북 스캔은 결국 종이책을 디지털 책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니 원하는 그것이다. 전자책으로 판매되지 않는 옛날 책은 북스캔 해서 디지털로 변환시킨 후 이북 단말기로 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스캔을 하면 파일 형식을 지정할 수 있게 해 준다. jpg, gif... 이런 파일 확장자로 만든다면 '이미지'를 뜻한다. PDF 형식도 가능하다. 문돌이의 한계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PDF로 만드는 경우 이미지 형식보다 가볍다고 알고 있다. PDF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문서 형식을 PDF 만드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다. 자그마한 글씨와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가 가득해 무엇인가 중요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 같은 것이 문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서와 달리 책은 의미가 담긴 글 무더기이니 PDF가 더 적절한 형태일 수 있다. 


가내수공업으로 도전

요즘은 집에도 프린터보다 복합기라는 것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프린터는 프린트만 할 수 있다면 여러 가지 일을 복합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 복합기다. 프린터와 달리 복사도 할 수 있고 스캔도 할 수 있다. 만만한 책을 하나 골랐다. 가장 저렴한 종이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누렇다 못해 원래의 나무껍질 색깔을 띠는 책. 옛날에는 잡지를 사면 부록으로 단행본을 껴 주기도 했다. 칼로 표지를 잘라냈다. 예리한 칼질로 깔끔하게 떨어뜨릴 것이라는 예상은 희망이었을 뿐. 억지로 잡아 뜯은 듯 표지 끝 단은 너덜너덜해졌다.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여러 번 칼질한 본문 종이는 새초롬해졌다. 쓰린 마음으로 재주 없는 손을 비난하며 스캔을 시작했다. 한 페이지 스캔을 마치고 다음 페이지를 기다리는 시간의 지루함이란! 책 한 권을 모두 스캔하는 시간보다 계절이 바뀌는 시간이 빠를 것 같다는 확신이 들 지경이었다. 이 방법은 아니다. 빠른 태세 전환이 필요했다. 북스캔 업체는 분명 다를 것이다. 달라야 한다는 신념이 폭풍 검색의 힘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귀찮음을 꾹 눌러 움직여야 한다는 명분을 쌓았다. 남이 시키지 않아도 주말에 무거운 책을 들고나가자는 설득이 스스로에게 필요했다.  적당한 위치와 깔끔한 설명, 군더더기 없는 가격, 무엇보다 주차장이 있다는 곳을 찾아냈다. 이제 가내수공업을 밀어낸 기업형 북스캔 업체를 만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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