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5월, 2026의 게시물 표시

[책] 불(佛)꽃 튀는 미술사

힘들게 산 책입니다 어떻게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지 기억나지도 않지만,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꽂혔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냥 '어머 이건 사야 돼!'라는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항상 책 소개할 때 말씀드리듯 내용도 안 보고 사기는 싫었어요. 마치, 돈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어짜피 뇌에서 사기로 결정한 순간 사야 할 명분은 뭐든 만들어내겠지만요.  그래서 실물 구경을 나섰죠. 우리나라 대형 서점 중에서도 재고를 가지고 있는 곳은 딱 한 곳. 영등포 교보였습니다. 관심 없는 아이를 꼬드겨서 같이 서점에 갑니다. 그리고 전 샀습니다. 아이도 뭔가 사줬습니다. 이렇듯 합리화를 위한 비용은 추가로 들게 됩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되는데 사실 아이를 데리고 나갔으니 아이에게도 책을 쥐어주고, 저도 뭐 하나 쥐고 와야 손해보지 않는 것 같아서라는 명분을 만들어 냅니다.  삼국시대 불교미술 이야기입니다. 당연한 말에 '삼국시대'라는 한 방울 추가 정보를 더했습니다. [추천드리는 분] 불상의 제작연도가 언제인지 어떻게 알아내는지 궁금하신 분 백제와 신라와 고구려의 불상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궁금하신 분 그림이나 탑을 누가 만들었는지 어떻게 알아내는지 궁금하신 분 [추천드리지 않는 분] 절이나 불상 뿐만 아니라 과거 문화재에 큰 관심 없으신 분  실생활에 써먹는 지식에 더 관심 많으신 분 박물관이나 문화재 구경보다 다른 것을 더 좋아하시는 분 이 책은 정말 마니아를 위한 것이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즈 서점인 교보에도 실물 재고를 가지고 있는 곳이 한 곳 밖에 없다고 할 때 인정했어야 했는데... 읽어보니 정말이에요. 미술이나 역사에 특별히, 그렇다고 전문적인 지식은 없는, 흥미를 가지는 사람 아니면 볼일 없을 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렵습디다. 일반인을 위해서 쉽게 쓴다고 노력하셨겠지만 전문적인 용어가 많이 등장하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눈은 읽었지만 머리가 20%나 이해했을까 모르겠습니다...

[책] 경제기사 궁금증 300문 300답

책 리뷰라 시작하는 책 소개 이 책은 경제 관련 기초를 잡고 싶어 하는 분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책입니다. 제가 경제 관련 글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 제가 되고 싶은 목표로 삼았던 책이기도 하고요. 목표로 삼은 가장 큰 이유는 '2018년 개정 증보판'처럼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이기 때문입니다. 2026년이 된 지금은 또 개정판이 나와 있죠. 스테디셀러가 되었다는 말은 그만큼 꾸준하게 읽히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검증이 되었다는 것이니 믿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스테디셀러로 굳어지고, 이후 저자가 더 이상 개정판 낼 여력이 없어지는 때가 되면 고전의 반열에 오르겠죠.  경제기사를 읽을 때 나오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설이 들어 있는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원칙이란 것과 현실이란 사이에서 항상 고민하게 되죠. 굳이 개념을 잡아 보자면, 원칙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현실이란 항상 변하는 것입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변하는 현실도 찬찬히 뜯어보고 살펴보면 변하는 이유의 얼굴은 항상 다를지 몰라도 변하는 근본원인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원유의 가격이 올라서 경기가 어렵다고 할 때 원유의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됩니다. 어느 때는 OPEC 회원국들이 강하게 담합을 해서, 어느 때는 유전 가동이 중단되서, 2026년엔 원유를 나르는 길목이 막혀서입니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원론은 한가지입니다. 바로 '공급'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경제기사를 읽을 땐 항상 표면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건 기사를 쓰는 기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최신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식이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자의 역할은 최대한 사실에 맞게 현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다음부터는 독자의 역할입니다. 기사를 보고 이면을 해석하고, 연관된 사항을 예측하는 것. 즉, 해석과 예측은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죠.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나와서 해설을 해줍니다. 전문가는 해석을 돕는 ...

내 방 정리하기

  Friday. 2004. 4. 30 No.87 봄날의 리프레시 이제 완연한 봄이다.  어디로 나가볼까만 고민하지 말고 주말에 짬을 내서 ‘방 정리 레저’를 즐겨보자. ‘리프레시(Re-fresh)’라는 게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땀을 조금 흘리면서 물건을 들어내고 옷가지를 정리하고 책상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고 나면 기분도 활짝, 방도 반짝. 같이 사는 사람에게 칭찬도 듬뿍 받을 수 있다. 방 정리 레저의 기본 수칙 하나.  남 시키지 말고 직접 하자. 하지만 이를 어기는 사람이 너무 많다. 땀 흘리며 테니스를 하는 외국인에게 ‘저런 일은 아랫것 시키지 왜 직접 하나?'라고 물었던 구한말의 고리타분한 양반을 비웃지 마라. 그대가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둘, 분명한 기준을 세워라! 보관할 것, 버릴 것, 애매한 것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누면 된다  셋, 수납공간을 확보하라. 수납공간은 상자가 될 수도, 수납장이 될 수도 있다. 상자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으니 꼭 확보해 놓자. 요즘 대형 할인점에 가면 싸고 예쁜 상자를 구할 수 있다. 넷, 정리시간을 정한다. ‘방 정리’ 레저에 한번 빠져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끊임없이 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리를 해도 해도 더 하고 싶고, 예쁘게 꾸미고 나서도 만족할 줄 모르게 된다. 엄연한 레저이니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것이 필수.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됐나? 그다음은 방 정리 레저의 백미를 즐길 시간이다! 나에게 애매한 물건이 남에겐 보물이 될 수 있다. 일단 쉬운 것부터 처리한다. 보관할 것은 안 보이는 곳에 숨겨놓든, 책상 위에 늘어놓든 보관만 잘 하면 된다. 버릴 것은 쓰레기 분류법에 맞춰 밖에 내놓는다. ‘방 정리’ 레저의 쏠쏠한 양념 한 가지. 걸레질을 하면서 애매한 물건 처리 이벤트를 생각한다. 자, 버리기는 아깝고 갖고 있자니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 그 물건의 주인을 찾아 주는 멋진 일이 남아있다. 일단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예쁘게 ...

손으로 쓰는 편지

  Friday. 2004. 4. 2. 편지지 한 장이면 누구나 작가가 된다 편지를 써보자 자판을 타닥타닥 두들긴 후 ‘클릭’으로 발송해 버리는 이메일이 아니라,종이 위에 나를 옮기는 편지 말이다. 요즘은 휴대전화나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만남이 이루어진다. 잠시의 짬도 기다리기에는 지루해지고 고루해진 세상이다. 그럼에도 며칠이나 걸려서 도착할 종이 편지를 쓰는 것이 단순히 ‘정성이 뻗친’ 일만은 아니다.  "편지만큼 슬픈 것이 어디 있을까요? 생각은 문장으로 옮겨지며 얼어붙어 버리고 사랑의 가장 감미로운 감정은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책갈피 사이에 눌러놓은 이 시든 풀잎과 같아져 버립니다. 종이 한 장에 그대의 미래와 행복과 삶과 죽음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프랑스의 낭만파 시인 네르발의 편지 예찬이다 물론 연애편지이긴 하지만 편지의 매력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편지는 자유로움과 상상력의 발휘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아폴리네르가 그의 연인 루에게 보낸 그림편지(?)를 보면 편지가 단순히 문맥이 통하는 문장의 나열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종이 편지의 매력은 '애절함’이 아닌가 싶다. 컴퓨터 파일처럼 복사되지 않는 유일성, 비밀스러움, 필체와 편지지, 마음이 담긴 내용이 버무려져 화폐가치로 바꿀 수 없는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인지 편지는 영화에서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진다. 조금 작위적이긴 하지만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동생이 형을 찾아 다시 전쟁터로 뛰어들게 되는 것은 꾹꾹 눌러쓴 형의 편지 때문. 죽음 이후에 배달되는 남편의 편지를 소재로 만들어진 <편지>역시 아련함이 남는다. 편지는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작품이다. 굳이 편지지를 사지 않더라도 깔끔한 종이 한 장이 캔버스가 된다. 색깔 있는 아트지 한 장이면 잘라서 쓸 수도 있다. 종이 편지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펜이다. 값싼 볼펜은 오래되면 글씨가 번지니 권하고 싶지 않다. 형광물질이 들어간 펜은 ...

저렴한 '목욕 업그레이드'

  2004. 3. 5. No.79 로마 황제도 부럽지 않다! 로마인의 고급 목욕 문화  로마인이 목욕을 즐겼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들에게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곳이 아닌 정보교환과 사회생활을 위한 사교의 장소였다. 그래서 목욕장 이라고도 한다. 로마 황제가 시민을 위해 지은 공공건물 중 목욕탕은 포룸(forum, 광장) 못지않게 중요한 치적으로 인정받았다. 로마시대의 많은 건물은 지금까지도 현존하며 중 요한 유적으로 대우받고 있는데 대표할 만한 것이 로마시의 테르메 디 카라칼라(Terme di Caracalla), 즉 카라칼라 목욕장이다. 현재는 오페라 극장 등으로 용도가 바뀌었지만 시민문화를 향상한다는 면에서 본다면 2,000여 년의 세월에도 변치 않는 기능을 하고 있다.  3대 테너와 목욕탕  세계의 3대 테너로 불리는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이들이 '스리 테너’라는 별칭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90년부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기념해 이루어진 로마 공연, 1994년 파리,1998년 LA로 계속된다.  이 공연은 최근 DVD로 재발매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무대였던 곳이 바로 목욕탕이라는 사실이다. 위에서 얘기한 '카라칼라 목욕장’이 바로 그곳이다. 일본인이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시대에 살았던 로마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뛰어난 로마 이야기꾼이다. 매년 한 권씩 출간된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는 최근 12권이 발간됐다. 첫 장을 장식하는 로마인이 누구일까? 기묘하게도 카라칼라 황제다. 이 얼마나 절묘한 조합인가! 카라칼라 황제의 조각상도 실려 있으니 찌푸린 인상의 고대 로마 황제와 한번 대면해 보도록.  목욕 문화 업그레이드!  최근에 반신욕이 유행이다. 목욕이라고 하면 뜨거운 물에 전신을 푹 담그고 "아, 시원하다"하는 소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하긴 하다.  하지만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데,참자. 37~38 °C 정도...

여백의 미학, 서예(書藝)

  2004. 1. 2 No.70. 심신 단련 도모하는 종합 복고 레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폼 나는 레저 하나  '서예’를 복고 레저의 하나로 소개하자니 말투부터 달라진다. 그만큼 서예가 고상한 취미인 동시에 심리 효과(?)가 탁월한 행위라는 것이 다시금 생각난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종이(紙), 붓(筆), 먹(墨), 벼루(硯)의 네 가지를 소중히 여겨 '문방사우’라고 불렀다. 얼마나 친하고 가깝게 생각했으면 '친구(友)'라 불렀겠는가? 서예는 단순하게 말하면 보기 좋게 글씨를 쓰는 것이다. 균형과 조화를 맞춰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필치를 표현했다면 그것이 서예다. 그 아름다운 필치를 구사하기 전에 물을 길어 먹을 갈고 문진을 꺼내는 행위 역시도 단전호흡에 못지않은 정성과 기가 필요하니 그것만도 요즘 한창 유행히는 ‘웰빙’에 어울리는 레저다. 또, 서예와 관련된 물건은 어떤가. 서예의 큰 특징을 보여주는 붓을 보라. 서예 붓은 서양화를 그리는 붓이나 필기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필기류와 다른 모습이다. 나무에 끼워진 부분은 잘록하게 마감되어 있고, 그 아래 몸통 부분은 부드럽고 유연하게 풍성해진다. 마지막 끝 부분은 길고 날렵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서예 붓의 기본 모습이다. 서양미녀들의 울룩불룩한 글래머 스타일이 아닌 우리나라 여인 같은 맵시를 갖춘 붓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자태를 가져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장이모 감독도 인정한 지 ·덕 ·체 놀잇감  장이모 감독의 <영웅>을 보면 화려한 영상미와 더불어 쏠쏠한 지적 유희를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 '죽간'이 가득 찬 도서관 장면은 그 영화의 숨은 백미다.  이에 못지않은 '서예’의 매력이 등장한다. 파검(양조위 분)이 핏 빛으로 써낸 ‘검(劍)'이란 글씨. 그 글씨는 분명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니 하얀 천에 쓰였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글씨를 쓰는 행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서예와 검법이 '힘과 정신력’에 의존...

떳떳하게 나 홀로 영화를!

(  Friday. 2003. 12. 5 No.66) 홀로 영화 보는 것의 무궁무진한 장점 실용 면부터 따져보자 혹시 유명한 영화를 보러 갔다가 매진된 경우를 당한 적이 없는가? 당연히 있을 것이다 혼자 가면? 현재까지의 경험상 영화 시작 전에만 도착하면 자리를 구할 수 있다.  비록 위치는 좋지 않지만 둘이기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는다. 돈은? 두 장 살 돈이 있다면 감동적인 영화를 두 번 반복해서 볼 수도 있고 두 편의 영화를 볼 수도 있다.  같은 금액이 두배의 즐거움이 되어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영화감상도 레저 생활인 만큼 순수 감상 측면에서 장점을 체크해보자. 큰 장점은 영화 자체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웃고 싶을 때 옆 사람 눈치 안 보고 의자가 흔들리도록 웃어도 되고 울다가 자연스레(?) 흐르는 콧물 들킬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전적으로 영화가 주는 감동을 온몸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졸리면 잘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억지'로 영화 보는 고문을 당할 필요가 없다. 타인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다는 이유로 끌리지도 않는 영화를 보는 가증스러움에서 해방된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나서 불필요한 논쟁이 유발될 싹을 제거할 수 있다. 내가 재미있으면 되고 내가 만족하면 된 것이지,촬영기법이나 배경음악과 주연배우의 연기 내용에 대한 견해 차이로 괜히 마음 상할 필요 없지 않은가? 부차적으로 혼자 온 다른 이성과 영화 같은 만남도 기대할 수 있다.  다른 이를 만났을 때의 대처법  아직도 영화는 '둘’ 이상이 보는 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 무척 많다. 극장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대처법을 소개하니 유용하게 써먹기 바란다.  첫 번째는 일단 ‘선수 쳐라’. ‘너 아직도 컴컴한데 혼자 못 다니니?’ 상대방은 의외의 공격에 당황하게 된다. 그때 유유히 사라져라. 더 있어서 좋을 것 없다. 혹시 상대방이 먼저 말...

한결같은 상상 증진,피겨(Figure)

(  프라이데이 2003. 10. 10. No.58) 키덜트라는 어휘적 •실제적 즐거움 키덜트(Kidult)란 키드(Kid)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라고 유식한 척 용어 풀이를 해 보지만 쉽게 말해 ‘철없는 어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도 유아 때의 놀이와 캐릭터를 즐기고 어린아이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는 어른들을 세련된 마케팅 용어로 포장한 것. 얼마 전부터 어른들의 고상한 취미생활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피겨’. 우리나라말로 ‘피겨' 또는 ‘피규어’라고 쓰며 ‘주로 영화나 동화 혹은 알려진 이야기에 등장하는 어떤 대상의 모형’이라고 볼 수 있다. 피겨는 잃어버린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열쇠다 사람들은 상상의 즐거움을 알고 있다. 그런데 상상이란 것이 어린아이에게는 꿈 내지 창의력과 동일시되어 중요하게 취급되는 반면 어른에게는 공상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여 터부시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상을 외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제제는 소설 끝자락에서 이렇게 말한다 ‘믿지 않는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 주고 싶었다. "바보야. 그건 표범이 아냐,그건 단지 한 마리의 늙은 암탉에 지나지 않아,내가 어저께 국으로 먹었던 -’" 상상의 단절은 어른이 되어 간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 있다.  어른이 되었다고 상상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며 더욱이 그 즐거움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피겨를 통한 상상유희는 오래된 인류 전통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이야기를 기억하는지? 최초의 피겨 러버(Figure- Lover)라고나 할까?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은 여성의 입상(立像)을 조각하고 나서 자신이 창조한 조각물과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 의해 조각이 실제 여성이 되며 피그말리온의 사랑은 현실화된다.  영화 <캐...

세계 정복의 무기는 '철학과 재미'

 프라이데이 No. 50 (2003년 8월 15일) 지도에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혼자 지도를 그리며 노는 것을 즐겨했던 내겐 큰 불만이 하나 있었다. 지도에서 적군과 아군을 나눈 뒤에 땅따먹기 놀이를 하려고 하면 공정한 룰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사위도 굴려보고 스스로 적군이 되었다 아군이 되었다 정신분열을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내게 인공 지능이 적재된 컴퓨터 게임은 신이 내린 축복이었다. 컴퓨터와 땅따먹기 게임을 하다 보면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는 것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인 줄 아신 할머니는 ‘좀 쉬어가면서 공부해라’하시며 건강을 걱정해 주시기까지 하셨다.  '세계 정복’이란 상상은 좁은 땅덩어리에서 외세에 시달려 온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머스마들이 대체로 가지고 있는 판타지 기도하다. 이러한 상상을 조금이나마 만족시켜 주는 수단이 바로 컴퓨터 게임.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대체 역사를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놀랍지 않은가? 내 손가락으로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니! 철학을 가진 땅따먹기 게임  수많은세계 정복류 게임 중에 시드 마이어(Sid Mier)라는 사람이 만든 '문명’이라는 게임이 있다. 왜 하필 '문명’이라는 게임을 추천하는 것일까? 이 게임은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라 하니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중국의 제자백가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니 긴장하지 말자. 기원전 4000 년부터 기원후 2050 년까지 하나의 민족을 이끌며 자신의 통치 철학에 따라 승리 조건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게임의 특징은 승리를 하기 위한 조건의 다양함에 있다. 말 그대로 힘으로 점령하는 ‘정복 승리,’ 높은 문화 수준을 통해 일궈내는 문화의 승리’,정치력을 이용한 ‘정치의 승리’등 다양하다. 어떤 승리의 조건이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관리해야 한다. 과학기술에 ...

책과 한바탕 노는 곳 책방

  Friday 46호 (2003. 7. 18) 아직도 나의 가장 중요한 소일거리이며 즐거운 놀이는 ‘책 찾기 놀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 억지로 읽어야 했던 책에 대한 거부반응과 내용도 모르면서 외워야 했던 책에 대한 공포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책 = 고리타분+재미없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책에서 ‘고상함과 ‘인류의 지식’ 운운하는 어려움을 슬쩍 밀쳐내고 나면 서점처럼 재미난 놀이터는 없다. 굳이 시간을 내서 서점을 찾는 것이 인터넷의 편리성과 효율성,무엇보다 매력적인 가격 할인의 장점을 모르는 구세대의 행태만은 아니다. 그것은 비로 씻긴 맑은 하늘과 풍경을 보기 위해 전철보다 북적거리고 길이 막히는 버스를 타는 이유와 같을지도 모른다. 이번 주말엔 살이 붙어 거추장스러운 몸을 추스린 후 최근에 문을 연 강남의 대형 책방을 찾아갔다. 놀이터 하나가 더 생겼다는데 한번 방문해 줘야 책방 주인들도 즐거워할 것 아니던가? 야박하게 말하면 요즘 책방 주인들은 내가 내민 영수증 속의 책값에 따라 즐거움이 비례하겠지만 신경 쓰지는 않는다. 놀이터를 찾을 때의 복장은 최대한 편하게 하고 꾸미지 않아야 한다. 면도는 물론 머리도 감지 않은 채 찾아 갈수록 자유스러움을 느낄 수 있고 놀이를 방해할지 모르는 주위 사람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게 하는 부수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책 찾기 놀이'는 목표를 향해 돌진한 후 쟁취하는 전투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에 드는 책을 찾는다는 결과와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유희 활동이다. 후텁지근하고 음울한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순간 책이 가득한 보물섬 한가운데 등장하게 된다. 그때의 감동을 동굴에서 벗어나자마자 마주친 무릉도원의 형상이라고 말하면 과장이려나? 무엇을 꼭 사야 하는 것도 아니고 꼭 찾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강제성과 목적의식을 확고히 하면 할수록 재미는 반감된다. 먼저 눈에 띄는 대로 여유 있게 책과 책의 배열을 즐기면 되는 것...

[혼자놀기] 고대인들도 즐겼던 레저, 그림 그리기

  2003. 11.21. No. 64. 예술 본능 일러스트와 놀기 그리는 것은 본능이다.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역사상 글보다 그림이 먼저 존재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신동이라도 글을 깨우치기 전에는 분명  줄 긋기부터 시작했다. 끝까지 글을 먼저 깨우쳤다고 우기는 것은 부모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글자의 역사는 몇 천년 전이지만 그림의 역사는 알타미라 벽화가 그려진 1만 ~1만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 하필 들소 떼를 동굴 안 천장에 그려 놓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마도 그것으로 먹고 살 후세 연구자들을 위해서인지···혹은 '하도 심심해서'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 '그리기' 욕구는 본능이다. 어려서는 마징가 Z와 태권 V를 잘 그리는 녀석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예쁜 옷을 잘 그리는 아이를 부럽게 쳐다보던 누이의 눈매에서 느꼈던 동질감은 ‘왜 나는 못 그릴까? 였다. 커다란 검은자 위에 작은 동그라미 세 개로 포인트를 주어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만드는 것이 마냥 신기해 보이기도 했다.  만화는 그림의 조상 이자 예술행위다. '만화'라는 말에는 '카툰’,‘코믹스’, '애니메이션’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만화의 정의를 간단한 끄적거림’이라고 하자. 더해서 ‘어떤 의미나 형태를 갖춘 정도’라는 기준을 둬야 아이들의 것과 구별이 될 터. 추상화는 그 경계에 서 있을 것 같다. 내 개인적 주장이지만, 그림의 형태를 갖춘 행위에 가장 근접한 것이 '만화’가 아닐까. 모든 그림은 '끄적거림’에서 나온 것이니 만화가 그림의 조상이라고 우겨 볼 만하다. 그렇다면 ‘그림= 예술’ 일 경우 만화는 ‘끄적거림 예술’의 경지에까지 다다르는 고상한 분야인 것이다. 그리고 이 끄적거림을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실행한다면 당신은 '예술활동을 레저에 접목한 멋진 사람'으로 변신하게 된다. 때때로 스스로의 이런 자가발전적 생각에 대견해하곤 한다. 만...

지그소 퍼즐로 의욕 충전

(2003년 게재글)  무기력한 삶에 기름칠하는 의욕적 레저  남에게 이야기하기에 궁상맞아 보이는 놀거리 하나가 있다 ‘지그소퍼즐(Jigsaw Puzzle)'이란 것인데, 수백에서 수천 개의 엄지손톱만 한 조각을 하나하나 맞추어서 거대한 그림을 완성시키는 놀이다. 지그소퍼즐이란 명칭은 나무에 지도를 붙인 다음 실톱(Jigsaw)으로 잘라내서 조각 맞추기 놀이를 한 것에서 유래했다. 현재는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종이를 사용한다. 대형 문구점에 걸린 멋들어진 완성품을 힐끗 쳐다보면서 감탄만 하지 말고 한번 도전해 보자. 인내력, 지구력 그리고 체력과 시력 지그소 퍼즐은 초보자용인 300~500 조각부터 중간급인 1,000~3,000조각, 마니아나 도전할만한 1만 조각 이상 등 다양하다. 이 중 자신의 수준에 맞는 것을 골라서 시작하면 된다. '자신의 수준’을 측정하는 세 가지 기준으로 첫째, 적당한 조명 아래서 수천 개로 나뉜 손톱 크기 조각의 색깔을 구분하여 적당한 위치를 찾아내는 지각 능력. 둘째, 퍼즐을 펼쳐 놓을 수 있는 공간의 넓이. 3,000조각 정도가 되면 가로 1m 세로 0.8m에 육박할 정도로 크기가 커지니 단칸방 생활을 하는 분들은 구입 시 주의하기 바란다. 셋째, 몇 시간을 쭈그리고 앉거나 엎드려서 버틸 수 있는 체력과 인내력이다. 1,000조각의 경우 기본적인 생명 유지 활동을 제외하고 매달릴 경우 1~2일 정도가 소요된다. 퍼즐 안에 인생이 있다  이 조각 나부랭이 - 몇 시간 동안 고생하다 보면 이 단어의 적절함을 깨닫게 된다 -들을 쉽게 맞추는 방법은 등급과 색깔별로 잘 나누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무리 조각수가 많아도 4개의 면 가운데 2개 면이 직선인 조각은 반드시 4개만 존재한다. 어느 집단에나 존재히는특권층이라고 부를 만한 네 귀퉁이 조각으로 기둥과도 같은 존재다. 혹시 5개나 3개가 발견되면 불량이니 교환해야 한다. 이 4개의 조각과 한 면이 직선인 조각들을 연결하면 전체의 틀이 잡힌다. 이때가 뿌듯함을 ...

옛날 책을 e-book으로 보고 싶었을 뿐이다.

 저작권법이 이렇게 된 이유는  음원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겁니다. CD를 사서 개인이 혼자 들을 목적으로 음원을 추출하는 것은 합법입니다. 하지만, 개인이 추출한 음원을 공유하거나 다른 이에게 주면 이 역시 불법이죠.  책도 마찬가지랍니다. 더불어 책을 스캔할 때 다른 사람에게 시키면 안 됩니다. 원래는 '북 스캔 대행업'이 성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일한 책이 들어오는 경우 스캔 업체는 스캔을 또 하지 않고, 해당 파일만 전달해 주게 됩니다. 이것까지는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또 다른 경우는 추출한 파일만 유통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출판사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당연히 책이 안 팔리니까요. 그래서 북 스캔 업체에 가면 '본인이 직접'하라고 합니다. 업체들의 비용 역시 '스캐너 대여' 명목으로 돈을 받게 됩니다.  뭔가 통로를 찾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옛날 책은 출판사들이 만들어 주지 않는 파일을 구할 방법은 구한말 지식인의 굳건한 가내수공업 밖에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낭비가 되죠. 말이 될지는 모르지만, 친구끼리 책을 교환해서 보듯. 디지털 파일도 교환해서 보는 방식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현재는 엄격하게 불법입니다.  브런치 북 글 모음 형식의 매거진이란 서비스가 있었는데 '브런치 북'이란 것이 새로 생겼습니다. 기존의 매거진을 손봐서 다시 브런치 북으로 만든 이유는 '리포트'때문입니다. 브런치 북에서는 기존의 부실한 통계를 보강한 데이터를 많이 보여줍니다. 브런치 북만이 아니라 브런치의 일반 글의 기본적인 통계 기능만 넣어줘도 좋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말투를 많이 바꿨습니다. 글을 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버전으로 만드는 실험이었습니다. 평소에 쓰던 글쓰기 습관이 아니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에너지 소비도 많이 되었지만 재미는 더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습관은 바꾸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이런 글 쓰기를 해 보고 싶었던...

이북(e-book)으로 읽기

 소설책 한 권을 붙잡고 시작했다. 모니터 가격이 싸져 듀얼 스크린을 사용하는 것이 부자의 상징이 아니다. 한 모니터에는 PDF 파일을 열어 두고, 다른 모니터에는 워드 프로그램을 띄웠다. PDF에서 텍스트를 긁어낸 후 워드에 붙여 넣고 좌우를 비교해 가면서 인식률 100% 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워드 프로그램에 붙여 넣은 텍스트 파일을 읽으면서 말이 안 맞거나 한자가 다른 것을 일일이 확인하며 한 땀 한 땀 글자 바느질을 한다. 다섯 권짜리 보다는 세 권짜리로 목표를 낮춰 잡았지만 글자 바느질도 쉬운 것은 아니다. 단순한 일은 맞다. 군대 행군이라면 동료가 있고, 회사 조립라인이면 월급이라도 받을 텐데 주위의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일을 하는 외로움. 구한말 지식인의 삶이려니 한다.  작업을 계속할수록 힘이 나기보다는 스스로 설득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목표를 잃는 느낌. 목표를 위한 목표의 느낌. 이북 단말기를 구매한 이유는 이북 단말기로 옛날 책을 읽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한 번 읽는 것이 아니라 PDF로 읽어보고, 교정을 보면서 또 읽고 즐겁지도 않게 맛은 못 느끼면서 억지로 밥을 밀어 넣는 작업을 계속하게 됐다. 몸에서 그 책이 싫어졌다. 성경도 아닌데 눈 빠지게 교정한 소설책을 PC 화면으로 읽은 소설책을 이북 단말기로 또 읽는 것이 무슨 즐거움일까. 자기 학대도 아니고. 시작했기 때문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막연한 그러면서도 무의미한 책임감만 남았다.  e-pub파일은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을 마무리하면 짧지만 찬서리 내리는 만주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걷던 구한말 선구자적 지식인의 장정이 마무리될 터이다. 인간지능으로 태어난 텍스트 파일 원본. 이 파일을 e-pub파일로 변환시켜 주면 완성된다. 그냥 텍스트로 저장한 후에 확장자를 pub으로 바꾼다고 될리는 없다.  sigil 텍스트를 e-pub으로 만들어주는 오픈 프로그램이다. 돈을 별도로 내지 않아도 다운로드해서 사용할...

이북(e-book)용 e-pub 파일

e-pub파일을 만들기 위한 재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텍스트.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먼저 내려보고자 했다. 책은 먼저 내용과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형식'이다. 인류의 지적 유산이나 철학, 깊은 성찰이 담긴 내용은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책을 물리적으로 분리해 본다면 종이와 잉크, 포맷으로 구분해 본다면 표지, 목차, 내용. 구성요소로 나누면 글자, 이미지, 여백. 지금 필요한 것은 글(text)과 이미지다. 종이책에서 어떻게 디지털 파일로 된 '글(text)'와 '이미지'를 추출해 낼 수 있을까? 스캔이란 작업 자체가 아날로그(종이)를 디지털(파일)로 바꿔주는 것이다. 디지털 파일은 바로 '이미지 파일'을 의미한다. 이 이미지들을 하나의 파일 형식으로 묶은 것이 PDF. 그럼 이미지 추출은 이미 가능하다는 의미다. 북스캔을 함과 동시에 이미지 파일은 확보됐다. 이제 텍스트를 추출하면 된다. 고맙게도 기술자들이 만들어 놨다. 기술을 모르는 현대인은 고마운 마음을 표하며 잘 이용하면 된다. 앞에서 얘기했던 북스캔 업체의 옵션 중에 두 가지를 설명할 때가 되었다.  레티나와 OCR 정확히 레티나가 의미하는 바는 모른다.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면, '레티나' 옵션을 주면 글씨가 더 또렷하게 스캔이 된다. '또렷'이란 말이 중요하다. OCR을 위한 든든한 우군이기 때문이다. 옛날 책일수록 '레티나'옵션을 주는 것이 텍스트 추출에 유리하다. 그러니 옛날 책이라면 진지하게 옵션 선택을 고민해 볼 만하다. 옛날 책일수록 폰트가 읽기 편하지 않았고, 인쇄용지나 품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번진 글자처럼 보인다. 흔하게 사용하는 스마트폰 사진 보정 기능 중 '선명하게'라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OCR은 중요한 단어라 검색해 봤다. Optical character reader/recognition. 역시 어렵다. 한국말...

이북(e-book) 단말기로 PDF를 보다

 그날 저녁 북 스캔한 PDF가 메일함에 들어왔다. 'Thanks God It's PDF' 심장이 뛴다. 새 책을 사서 막 첫 장을 넘기는 기분이 들었다. 이북 단말기에 전원을 넣는다. 이북 단말기는 스마트폰처럼 쨍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생긴 그대로 수려하고 깔끔하게 전원이 들어온다. 스스로가 이북 단말기임을 증명하듯 몇 번 깜빡인다. PC로 다운로드한 PDF 파일을 이북 단말기로 옮겼다. 여기까지는 신기할 것이 없다. 다운로드가 완료된 후 이북 단말기에 방금 PC에서 옮겨온 PDF 파일이 올라왔다. PDF 표지가 떴다. 컬러로 스캔을 했지만 자동으로 고풍스러운 흑백 이미지로 바뀌어 있다. 검은색과 흰색의 강한 대비가 아니라 적당한 회색이 들어 있어 거슬리지 않는 흑백이다. 그리고 클릭. 다른 파일의 로딩 시간보다 오래 걸린다. 실제로는 짧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혹시 뜨지 않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만큼은 긴 시간이다. 깜빡과 동시에 마법처럼 PDF 파일이 열렸다. 옛날 책을 이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앙증맞게 작다. 갓난아이의 손을 보는 기분이다. 어쩜 저렇게 작은 손에 손가락이 다 붙어있고, 손가락엔 마디가 다 있고, 그 마디에는 언젠가 국가에서 사람을 식별할 구분자인 지문도 있는지 신기했다. 이북 단말기 안의 PDF가 그랬다. 저 작은 화면에 제목과 삽화와 글자가 다 제대로 들어가 있는 것이 신기했다.  옛날 책을 PDF로 스캔한 후에 이북 단말기로 보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하나 더 있었다. 싱싱한 젊은이의 눈이다. 노안이 온 눈으로 이북 단말기에서 PDF의 글씨를 읽으려면 10cm 이내로 접근해야 한다. 햇빛 가리개처럼 이북 단말기로 얼굴을 가리면 글씨를 읽을 수는 있다. 옛날 책을 이북으로 보고 싶었던 것은 맞지만,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행위를 할 생각은 없다. 전철에서 이북 단말기를 코에 붙이고 있는 사람이 승차했다고 상상해봤다. 그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봤다. '이건 아니지'라는 결론....

북스캔(Book Scan)하다.

토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여유롭게 마실 복장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손에 들린 에코백에는 오늘 북 스캔할 책이 9권. 3권짜리 초한지와 5권짜리 열국지. 그리고 지난번 수작업하다 실패한 코마 상태의 책 한 권. 이 가게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주차장이었다. 9권의 소설책이 무거워 봐야 얼마나 무겁겠냐마는 그건 짧은 거리를 움직일 때 이야기다. 옛날 어머님들이 아이를 업고 매고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데리고 다녔던 만큼의 집념이 없는 내게 아홉 권의 소설책은 차로 운반해야 할 무게다. 여유로이 차를 몰고 사당동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이 없었을 적 운전사들의 능력에 새삼 감탄할 때는 지시하는 길목을 지나치는 순간이다. 이번에도 역시 지나쳤다. 대로변에서 골목으로 들어가고 한 번 더 우회전을 시킨다. 차 두대가 지나가기엔 좁아 보이는 골목으로 내비게이션이 계속 안내한다. 불안했지만 이미 기계에 굴복한 두뇌에는 업체로 가는 길을 저장해 놓지 않았다. 믿고 가는 수밖에. 생각보다 널찍한 주차장이다. 바닥에는 흔한 사각형의 주차구역도 없고, 주차장이라기보다는 자갈과 시멘트를 적당히 마당에 뿌려 놓은 것 같은 곳이었다. 당연히 주차 관리요원도 없지만 차들은 적당히 이중주차가 되어 있다. 주차장도 반듯하지 않다. 교외 주차장을 한 삽 떠다가 옮겨놓은 것 같은 친근함. 등을 보이고 있는 건물 한쪽에 세 개의 계단을 오르면 만나는 철문이 있다. 안내판도 없지만 그리로 들어오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북스캔(Book Scan)은 책처럼 수백, 수천 장의 종이를 빠르고 정확하게 스캔하는 것에 특화된 업태를 말한다. 개인들에게야 책을 스캔하는 것 말고는 없겠지만 학교나 병원, 회사 같은 곳에서는 온갖 종류의 서류뭉치가 있다. 이런 법인들을 대상으로 수익을 내기 위한 일도 같이 하고 있다. 북스캔은 셀프 스캔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귀찮은 일을 사람들이 할리가 없을 테니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다. 책과 웃돈을 주면 스캔을 한 후 파일을 보내주는 사업이다. 훨씬 편리했던 ...

이북(e-book)으론 읽을 것이 없다

그릇을 샀다 몇 번의 망설임을 지나 이북 단말기를 샀다. 주위에 이북 단말기를 산 사람들에게 사연을 들어보면 한 번에 결정해서 사는 사람은 버릇처럼 쇼핑하는 사람 말곤 없다.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이북 단말기를 사는 숫자가 비례하지 않는다. 생선을 담기에 딱 알맞은 접시를 보면 그릇 앞에서 한참을 만지작 거린다. 생선 몸통처럼 길쭉하면서 생선의 기름기가 스며들지 않게 반질거리는 재질, 더 맛있게 보이는 색에 취해 손가락으로 그릇을 살살 문지른다. 옆에서 함께 사는 사람이 물끄러미 쳐다보다 어서 가자는 눈짓을 한다. 집어 들다 말다 반복하다 다음에 사기로 마음을 먹고 뒤돌아서기를 몇 번. 마침내 장바구니에 담아 결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릇부터 꺼내 놓는다. 깨끗하게 닦아내고 나서 생선을 찾아본다. 어느 생선이 어울릴까? 생선이 그릇에 딱 맞춰 오르고 식구들이 생선살을 젓가락으로 요령 있게 발라내며 먹으면 그만이다. 더 바랄 것이 없다.  이북 단말기는 딱 생선을 담는 그릇이다. 접시 위에 먹고 싶은 생선을 올리면 그뿐인데 아뿔싸, 내가 원하는 생선이 없단다. 세상이 숫자처럼 아귀가 맞아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가지 이북 콘텐츠를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읽고 싶은 것이 없다. 이북으로 팔리는 파일들은 최근 것이다.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종이라는 몸을 보내고, 내용이라는 영혼만을 이북에 담아보고 싶었는데 영혼이 없단다.  영혼이 사라진 이유 특히나 옛날 책이라면 팔지 않기에 살 수 없다. 정확한 사연은 책을 찍어 낸 출판사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봐야 하겠지만 책 한 권 사보자고 출판사에 문의할 만큼의 열정은 없다. 내가 원하는 머리 모양대로 안 나와도 헤어디자이너 선생님이 밝은 표정으로 정말 괜찮다고 하면 '아닌데요'라는 말을 삼키고 일어선다. 돈을 훨씬 많이 내는 헤어숍에서도 침묵하는 사람이 왜 이북을 판매하지 않냐고 출판사에게 물어보는 일을 감내하기엔 지나치게 어려운 어려운 일이다.  출판사에서도 아직 종이책이 더 유...

종이책보다 이북 단말기가 좋은 이유

구차하게 이북 단말기의 장점을 설명해야 할 정도라면 차라리 종이책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이자 반문이다. 지금 처럼 종이책을 사고 태블릿으로 가끔 영상을 즐기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들으면 딱히 대거리할 게 없다. 기껏 '그러던지'라며 쿨하게 돌아서는 것이 깊이 찔린 공격의 여파를 숨기기에 적당하다. 특정한 단어와 짝을 이뤄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연어(連語)라 한다. 사전 만드는 일에 푹 빠져 대학원까지 다닌 IT업종의 지인이 알려준 말이다. 이북 단말기는 '굳이'와 연어를 이룬다. 항상 붙는 이 단어로 끊임없이 구매를 주저하게 한다. 이북 단말기 뒤에는 늘 물음표가 따라다닌다.  싸다 종이책보다 가격이 싸다! 이것 하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충분하지 않을까? 도서정가제라는 규제를 받는 독특한 시장에서 책을 싸게 구입하는 방법은 없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싸게 사는 방법은 이북을 사는 것뿐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 수도 있지만 마음껏 밑줄을 칠 수도 없고 생각을 끄적거릴 수도 없다. 괜히 찢어지기라도 하면 반납할 때 솔직히 고백하기도 하지만, 들키지 않으려 무인 반환함에 몰래 집어넣고 오거나 다른 사람이 저지른 일인 듯 모른 척하기도 한다. 횡단보도의 녹색불이 깜박거릴 때 건너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부터 신경 쓸게 많은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지갑의 안정을 확보하는 행위는 이북 구매다.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지만 스마트폰보다 이북 단말기가 좋은 이유는 이미 다 얘기했다.  부피와 무게 1/10이 아니라 1/100 그 이상으로 줄어든다. 장편 소설은 서너 권이 아니라 열 권도 되고, 열 권이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맘먹고 떠나는 여행에 차가 있으면 모를까 배낭에 수십 권의 책을 넣고 가기는 불가능하다. 차가 있더라도 트렁크 가득 책을 채우고 가는 것이 무슨 낭만이 있을까? 이북 단말기면 가능하다. 욕심을 한껏 부려도 된다. 여행하면서 책을 읽는다고 한들 열 권을 읽기는 버겁다. 그래...

이북(e-book) 단말기가 태블릿보다 좋은 이유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왜 산에 오르냐' 질문을 하면 보통 명확한 답 없이 '같이 산에 올라가 보자'는 말만 한다. 원체 걷기 싫어하는 몸을 가진 나는 산쟁이들의 막연한 권유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도를 아십니까 만큼이나 희뿌연 하다. 구름에 가장 가까이 가는 산쟁이들의 뜬구름 설명만큼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이북 단말기를 사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 산을 오르는 것과 이북 단말기를 사야 하는 이유는 똑같은 수준의 뜬구름 이야기다.  그래서, 비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사람에게 이북 단말기를 설명하느니 신문구독을 하면 머리가 좋아질 것이라고 설득하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르겠다. 태블릿 PC나 노트북,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는 글을 보기 위해 왜 이북 단말기를 또 사야 하냐고 누가 물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굳이' 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 된다. '굳이'에 힘을 주는 이유는 미련 때문이다. 혹시라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책쟁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으면 몇 마디 던져서 책쟁이 세상으로 낚아 올려 보려는 욕심 때문이다.  이북 단말기는 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기에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필요 없다. 괜히 설명을 길게 해 봤자 말하느라 듣느라 서로 진이 빠질 뿐이다. 게다가 이북 단말기를 팔아먹고사는 것도 아닌데 구질구질 설명을 늘여봤자 여름날 엿가락보다 찐득한 찜찜함만 서로의 마음에 묻게 될 일이다. 그래도 늘어난 엿가락을 잘라내지 않고 돌돌 마는 것처럼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는 것은 미련이다.  책을 오래 보려면  눈이 편안해야 한다. 눈을 학대하는 것이 태블릿과 스마트폰이다. 책은 종이라는 물성에 잉크를 묻혀서 만들어진다. 수백 년 전에 종이가 만들어진 후 인쇄기술이 발달해 오면서 최적화된 것이 책이다. 가장 가독성 높은 폰트를 사용하고 종이 색깔을 조금 누렇게 만들어야 눈에 편하다는 사실도 수많은 실험과 경험을 축적해서 뽑아낸 결과다. 책에는 뇌를 행...

e-book 단말기를 샀다.

 회상 거금 10만 원이 넘어가는 가격을 지불했다. e-book단말기라고 하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종종 있다. 책을 많이 읽더라도 나이 든 사람들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고 나이 어린 사람들 중에도 들어만 봤지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아무튼, 젊은이들은 별 쓸모없는 기기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기 때문이라는 착각과 e-book단말기로 많이 읽을 것이라는 헛된 믿음과 디지털 시대에도 책을 읽는 행위는 숭고한 것이라 믿는 신념이 뒤섞여 결재했다. 공자에게는 멀리 있는 친구의 방문이 반갑겠지만, 현대인에게는 친구보다 택배기사 분들의 '배송 알림 문자'가 더 반갑다. 힘들다 하소연하지도 않고 사례로 밥 사주러 나갈 필요도 없다. 그분들은 그저 묵묵하게 내가 원하는 것만 놓고 사라진다. 그만큼 현대인들에게 고마운 존재가 있을까? 우리나라의 발달된 사업구조의 도움이 단단한 기반이 되어 택배사업만큼은 전 세계 최고라 자부할만하다.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누리는 혜택이라고까지 과장하고 싶지 않지만 만족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호칭 정의 일단 같이 이야기를 해 나가려면 유사한 용어부터 정리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귀한 이상을 향해서 달려갈 때 삐걱거리는 일들은 아주 사소한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구보다 모든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부부 사이에도 서로를 죽일 듯이 미워하게 되는 일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치약의 중간부터 누르는 일, 양변기의 뚜껑을 내리지 않는 일, 샤워하고 물을 뿌렸는지 등등 나와 관련 없는 사람이 한 일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일이지만 같이 사는 사람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무례한 일이 되어 버린다.  동지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대한의 독립인지, 조선의 독립인지, 사회주의로의 독립인지, 민족의 독립인지에 따라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독립만큼 중요하지는 않은 일을 나누는 것이니 부담감은 덜하고 양보할 마음의 여유도 더 넓다. 그래도 뜻이 안 맞을 수 도 있겠지만, 서로 의견을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