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종이책보다 이북 단말기가 좋은 이유

구차하게 이북 단말기의 장점을 설명해야 할 정도라면 차라리 종이책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이자 반문이다. 지금 처럼 종이책을 사고 태블릿으로 가끔 영상을 즐기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들으면 딱히 대거리할 게 없다. 기껏 '그러던지'라며 쿨하게 돌아서는 것이 깊이 찔린 공격의 여파를 숨기기에 적당하다. 특정한 단어와 짝을 이뤄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연어(連語)라 한다. 사전 만드는 일에 푹 빠져 대학원까지 다닌 IT업종의 지인이 알려준 말이다. 이북 단말기는 '굳이'와 연어를 이룬다. 항상 붙는 이 단어로 끊임없이 구매를 주저하게 한다. 이북 단말기 뒤에는 늘 물음표가 따라다닌다. 


싸다

종이책보다 가격이 싸다! 이것 하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충분하지 않을까? 도서정가제라는 규제를 받는 독특한 시장에서 책을 싸게 구입하는 방법은 없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싸게 사는 방법은 이북을 사는 것뿐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 수도 있지만 마음껏 밑줄을 칠 수도 없고 생각을 끄적거릴 수도 없다. 괜히 찢어지기라도 하면 반납할 때 솔직히 고백하기도 하지만, 들키지 않으려 무인 반환함에 몰래 집어넣고 오거나 다른 사람이 저지른 일인 듯 모른 척하기도 한다. 횡단보도의 녹색불이 깜박거릴 때 건너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부터 신경 쓸게 많은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지갑의 안정을 확보하는 행위는 이북 구매다.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지만 스마트폰보다 이북 단말기가 좋은 이유는 이미 다 얘기했다. 


부피와 무게

1/10이 아니라 1/100 그 이상으로 줄어든다. 장편 소설은 서너 권이 아니라 열 권도 되고, 열 권이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맘먹고 떠나는 여행에 차가 있으면 모를까 배낭에 수십 권의 책을 넣고 가기는 불가능하다. 차가 있더라도 트렁크 가득 책을 채우고 가는 것이 무슨 낭만이 있을까? 이북 단말기면 가능하다. 욕심을 한껏 부려도 된다. 여행하면서 책을 읽는다고 한들 열 권을 읽기는 버겁다. 그래도 사람 욕심이란 게 낯 선 환경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싶어 하는 낭만에 취해 꾸역꾸역 책을 넣어가고 싶어 한다. 종이책이라면 금세 배낭이 불룩해지고 토할 지경이 된다. 이북 단말기는 수십 권 수백 권 가능하다. 더 정확하게는 메모리가 허락하는 한 집어넣을 수 있다. 책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책장을 들고 갈 수도 있다. 


책장을 들쳐 매고 가는 만큼의 효과를 하나의 두 손바닥만 한 단말기로 낼 수 있다. 종이책의 무게와 부피 모두를 이북 단말기가 넉넉하게 받아낸다. 혹시라도 이북 단말기 안에 내장된 메모리가 부족하다면 외장 메모리를 사서 넣으면 된다. 여행을 떠나기 전 또는 외출 나가기 전 어떤 책을 들고 갈까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대신, 어떤 cover가 나를 더 돋보일지 고민을 하겠지...


공간비용

들고 다니는 문제에서 조금 비틀어 자리를 차지하고 버티는 측면도 따져봐야 한다. 집에 책이 많아 5평 정도를 책이 점유하고 있다고 추측해 본다. 서울에서 30평짜리 아파트가 3억 일리는 없지만 계산을 편하게 하기 위해 3억짜리 아파트에 산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1평당 비용은 1천만 원이 된다. 1평을 사용하는 공간 비용만 1천만 원. 책장이 5평을 차지하고 있다면 5천만 원을 책이 조용히 쓰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지적 만족과 장식 효과까지 생각해도 비싸다. 게다가 책장이란 녀석은 꿈쩍하지 못하고 모두가 피해가야 한다. 이 녀석이 자리를 잡고 나야 책상이든 침대든 다른 공간이 나온다. 이 책들을 모두 이북 단말기로 옮긴다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나에게 갑자기 수천만 원어치의 공간이 생긴다. 종이책을 100% 이북 단말기 안에 집어넣어도 아쉽지만 현금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공간이 생긴다. 부수적인 효과로 항상 다투던 가족들에게도 집안이 깨끗해졌다고 칭찬 들을 수 있다. 


멸실 염려

장마철만 되면 집안에 물이 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도 없을 리야 없겠지만 많이 줄어들었다. 책이 물에 젖는 일을 보기는 힘들어졌을지언정 종이책은 습기를 참 좋아한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이친 빗물에도 책은 젖을 수 있고, 뛰어노는 아이 손에 들린 음료수가 엎어지면서 물에 젖을 수도 있다. 라면 받침으로 쓰던 책에 라면 국물이 스며들 수도 있다. 물에 젖어버린 책을 보는 것은 꽤나 우울한 일이다. 껌처럼 들러붙은 종이를 떼내다 찢어지기 일수, 페이스 페인팅을 한 것처럼 색 바랜 종이, 물에 절여진 주름 잡힌 손가락 같이 구깆해진 몰골. 어느 것 하나 대범한 척 넘어가기 어렵다. 더 괴로운 일은 그런 모양을 계속해서 봐야 하는 일이다. 

물에 젖지 않더라도 종이책은 나와 같이 늙어간다. 흰머리카락이 생겨나고 주름이 자글자글 해지는 얼굴처럼 하얀 종이는 누렇게 변색되고 늙은 종이 냄새를 풍긴다. 책쟁이들에게야 오랜 친구의 향기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퀴퀴하고 음습한 종이 덩어리 냄새일 뿐이다. 머리카락이 얇아지고 빠지듯 종이에 찍인 글자들도 조금씩 날아간다. 아이의 말랑한 손가락으로 넘기던 새책도 세월을 비켜가지 못한다. 거칠고 주름진 손가락은 말라서 종이를 집기에 미끄러진다. 종이 결도 거친 피부처럼 일어나고 선명했던 글자의 콧대도 낮아진다. 조선시대의 종이는 더 오랜 세월을 버틴다지만 화학약품 처리로 더 빨리 더 저렴하게 찍어낸 책들은 더 빨리 더 쉽게 늙어간다. 

세월이 가져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방에 자리 잡고 앉은 퀴퀴한 늙은 뭉치를 싫어하는 가족들은 주인 몰래 책을 내다 버리기도 한다. 한두 권이야 기억하겠지만 나중에 읽으려 속에 두었던 책이 몇 권 빠져도 알아채기 쉽지 않다. 나중에 범인을 잡아 싫은 소리를 한들 버려진 책은 이미 분리수거 차량에 실려 먼 길을 떠난 후다. 

이북 단말기에 담긴 파일은 육체를 버린 영혼처럼 언제나 새것이고, 언제나 그대로이다. 어디서든 망이 연결된 곳에서 꺼내 볼 수 있도록 저장소를 제공하는 곳도 있으니 더 이상 책과의 이별이나 생채기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디지털로 이북 단말기라는 마법의 도구로 종이책에게 불멸의 생을 안겨줄 수 있다. 


검색

내가 분명히 어디선가 본 아름다운 문구.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는 지식 기억의 조각. 그 조각을 찾기는 쉽지 않다. 머리가 좋을 때야 몇 페이지까지 기억할지 몰라도 침침해진 뇌 세포는 대략 어느 책이 아닐까라는 희미한 정보만 내놓는다. 그래도 찾아내면 희열을 누리겠지만, 보통은 못 찾는다. 책에서 읽은 지식을 아이에게 자랑하거나 친구에게 잘난 척한 후에 확인하려고 책을 뒤져도 못 찾으면 우기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상한다. 책은 속이지 않아도 늙은 뇌는 스스로를 속인다. 위치를 속일 수도 없는 것을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 내가 나를 속이고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일. 책과 나만 아는 이야기는 오롯이 기억에만 의지해야 한다. 메모를 즐기는 사람이나 강박적으로 정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흔하디 흔한 사례일 뿐이다. 

이북 단말기는 '검색'기능을 제공한다. 내가 가진 책에서 내가 생각한 문구를, 단어를 내 머리가 아닌 기계가 찾아준다. 이 얼마나 연애편지를 쓸 때나 잘 난 척할 때 유용한 기능인가! 


대신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무리 이북 단말기가 훌륭하다 치켜세워도 모든 것이 나을 수는 없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100가지 중 99가지가 좋아도 한 가지 모자란 것이 있는 것이 상식이다. 명화를 가진 사람처럼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은 그 어떤 그림보다 감동적이다. 똑같은 모양과 전혀 다른 색, 크기, 두께가 만들어내는 책 벽화는 추억이 깃든 자부심이다. 눈이 아닌 손의 감촉, 손으로 직접 적어 넣은 글씨, 밑줄. 서로 주고받으며 남긴 글들. 책에 덧붙여진 몸의 기억. 밑줄이나 메모는 이북 단말기에서도 가능다. 하지만, 내가 적었어도 내가 쓰지 않은 묘한 이질감은 내 것이라고 말하기에 멈칫하게 된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세계 GDP Top 6(1980~2024) 점유율

  May 14, 2024 Data 출처 : All figures were sourced from the IMF’s World Economic Outlook (April 2024 edition) and are based on using current prices. 1등 미국의 체급 1980년 이후로 2024년 까지 반세기동안 가장 낮은 점유율은 21.1%. 최저 20%, 최고 1/3 이상. 현재는 약 1/4.  코로나팬데믹 이후 나머지 경제를 압도하는 분위기 2000년 부터 시작된 중국의 놀라운 성장 거울에 비추듯 2010년에 일본과 X자로 Cross.  2020년 전세계 GDP의 1/5수준이 되자 시작된 미국과의 갈등.  중국은 계속 유지할까? 아니면 일본처럼 하락할까? 일본, 2위에서 하락 일본은 버블이 한창인 1990년대 후반 17.8%를 정점으로 2024년엔 3.8%로 하락.  경기침체와 고령화로 경제가 쇠퇴했다고 하지만, 미국의 책임(플라자 합의 등)이 있을 텐데...  UE 는 점유율이 계속 낮아지는 중. 독일 경제가 힘을 못 써서일까?  인도 는 천천히 상승하고 있다. 드라마틱하게 높아질까? 기사원문 : https://www.visualcapitalist.com/ranked-the-top-6-economies-by-share-of-global-gdp-1980-2024/ [혼잣말]  동일한 매체의 다른 기사 기준 우리나라는 2000~2022년에 약 12위권. 우리나라 GDP... 세계 관점에서 보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 숫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을 걸고 사는 중인데... 

'세상 친절한 경제 상식' 책을 내면서 고마운 분들

(2022.12.26)  '세상 친절한 경제 상식'이 대표작이다 평생 갖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내 책이다. 그중에서도 스테디셀러. 빌딩도 갖고 싶지만 빌딩보다 꾸준하게 팔리는 책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허세 가득 상상했다. 주위의 도움과 운이 좋아 첫 책을 냈다. 그때가 2019년. 이후로 매년 한 권씩 책을 내고 있다. 첫 책이 가장 잘 팔렸다. 요즘도 누군가 찾는단다. 오랜만에 포털에서 내 책을 검색해 본다. 전직 대통령에게 소개될 만큼의 실력은 안되지만 한 달에 한 번 꼴로는 책을 언급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거 이거. 나에게도 스테디셀러라는 것이 생길까? 글쎄. 알 수 없다. 내가 가진 운은 이미 다 사용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동안 삶을 돌아보면 참 잘난 거 없는데 꾸역꾸역 여기까지 살아온 것을 보면 로또나 경품 당첨이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 살아온 궤적이 모두 감사할 일이니까. 겸손을 가장한 자랑은 멈추고 다시 제대로 자랑을 시작해야겠다.  '세상 친절한 경제상식' 개정판을 준비 중이다 갑자기 '미래의 창'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처음엔 모르는 전화라 안 받았다. 다시 문자로 '미래의 창'이라 해서 알게 되었다. '미래의 창' 출판사는 매년 말이 되면 내년 트렌드가 뭐가 될지 모든 사람이 챙겨 보려고 사는 '트렌드 코리아'를 출간하는 곳이다. 모르는 곳에서 전화가 오면, 내가 예상할 수 없는 일로 전화가 오면 설레기보단 일단 쫀다. 뭘 잘못했나? 소심한 성격은 나이 먹어도 변하지 않는다.  고맙게도, 내 책이 '오디오 북'으로 잘 나간단다. 오디오 북 서비스 회사에서 미래의 창으로 연락이 왔고, 미래의 창에서 내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연락을 준 거였다. 얼떨떨했다. 내 평생 모르는 사람에게 '잘했다'라고 전화받은 기억은 없다. 얼마나 소심한 사람인지...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책이 나온 지 좀 되었고, ...

[혼자놀기] 고대인들도 즐겼던 레저, 그림 그리기

  2003. 11.21. No. 64. 예술 본능 일러스트와 놀기 그리는 것은 본능이다.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역사상 글보다 그림이 먼저 존재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신동이라도 글을 깨우치기 전에는 분명  줄 긋기부터 시작했다. 끝까지 글을 먼저 깨우쳤다고 우기는 것은 부모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글자의 역사는 몇 천년 전이지만 그림의 역사는 알타미라 벽화가 그려진 1만 ~1만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 하필 들소 떼를 동굴 안 천장에 그려 놓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마도 그것으로 먹고 살 후세 연구자들을 위해서인지···혹은 '하도 심심해서'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 '그리기' 욕구는 본능이다. 어려서는 마징가 Z와 태권 V를 잘 그리는 녀석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예쁜 옷을 잘 그리는 아이를 부럽게 쳐다보던 누이의 눈매에서 느꼈던 동질감은 ‘왜 나는 못 그릴까? 였다. 커다란 검은자 위에 작은 동그라미 세 개로 포인트를 주어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만드는 것이 마냥 신기해 보이기도 했다.  만화는 그림의 조상 이자 예술행위다. '만화'라는 말에는 '카툰’,‘코믹스’, '애니메이션’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만화의 정의를 간단한 끄적거림’이라고 하자. 더해서 ‘어떤 의미나 형태를 갖춘 정도’라는 기준을 둬야 아이들의 것과 구별이 될 터. 추상화는 그 경계에 서 있을 것 같다. 내 개인적 주장이지만, 그림의 형태를 갖춘 행위에 가장 근접한 것이 '만화’가 아닐까. 모든 그림은 '끄적거림’에서 나온 것이니 만화가 그림의 조상이라고 우겨 볼 만하다. 그렇다면 ‘그림= 예술’ 일 경우 만화는 ‘끄적거림 예술’의 경지에까지 다다르는 고상한 분야인 것이다. 그리고 이 끄적거림을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실행한다면 당신은 '예술활동을 레저에 접목한 멋진 사람'으로 변신하게 된다. 때때로 스스로의 이런 자가발전적 생각에 대견해하곤 한다. 만...